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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20 15:21
국세법령정보시스템 산파역…국세청 자존심 세우다
 글쓴이 : 세무법인 이원
조회 : 3,864  
희망전보제도 도입…몸으로 보여준 국세청・후배 사랑
억울한 과세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일반 국민, 그리고 애매한 세법 규정을 앞에 두고 과연 세금을 매기는 것이 옳은지를 고민하는 국세공무원들이 제일 먼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곳이 국세법령정보시스템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007년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공개된 국세법령정보시스템은 개정 전후의 모든 조세법령과 함께 수십만 건에 달하는 ▲예규 ▲심사・심판 결정례 ▲각급 법원의 판례 ▲국세청 훈령 ▲국세청 고시 및 각종 서식 등 모든 국세 관련 정보가 총망라해 수록된 곳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지난 연말 역삼세무서장을 끝으로 국세청을 떠난 임재원 前 역삼세무서장(사진)이 국세청 재직시절 국세청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서운 뚝심을 발휘해 이뤄낸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 모두가 반대했던 시스템… 찻집 전전하며 뚝심으로 도입
임재원 세무사가 국세청 재직시절 국세법령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은 후배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국세청 조직에 대한 ‘자존심’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4년 천안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으로 사무관 초임발령을 받은 그는 여직원이 세무서를 찾은 민원인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받으면서도 아무 대꾸도 못 하고 쩔쩔매고 있는 안타까운 장면을 보았다.
이 민원인은 국세청 상담센터에서 받은 인터넷 상담자료를 들이대며 “비과세가 맞는데 왜 세금을 내라고 하느냐”고 따졌다. 세무서 직원들은 민원인이 갖고 있는 인터넷 상담자료가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 민간업체인 S사와 J사가 인터넷사이트로 법령정보를 유료로 제공하면서 국세공무원들에게는 무료로 이용하도록 했다”며 “국세법령정보를 국세청 스스로 만들면서 정작 직원들은 외부 민간업체 법령정보를 빌려서 보는 현실이 무척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해 국세청 본청 법무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곧바로 ‘국세법령정보시스템 구축’이라는 업무개선 아이디어를 냈으나 내부의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S사와 J사는 수십 년간 영리를 목적으로 유료화한 기업이어서 제공하는 법령정보가 무척 세련됐는데 과연 공무원이 같이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서부터 예산과 인력도 없는데다 후발로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등 반대이유도 다양했다.
이같은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 그는 “국세청이 언제까지 민간업체가 만들어 놓은 법령정보를 공짜로 빌려서 볼 수만은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고 4개월이 넘는 설득 노력 끝에 마침내 국세청장 결재를 받는 데 성공했다.
예산과 인력이 없어 국세청 지하의 전산교육장 한 귀퉁이를 빌려 교육장 컴퓨터를 이용하며 일을 시작했다. 그나마 전산교육이 있는 날이면 장소를 비워줘야 했다. 그럴 때면 팀원들 모두를 데리고 근처 인사동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온종일 구축방안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당시 20만 건이 넘는 ▲예규 ▲심사・심판 결정례 등 법령자료의 입력문제도 과제였다. 그는 고민 끝에 한국세무사회 회장을 만나 국세청도 수습세무사의 수습기관으로 지정받는 데 성공, 수습세무사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냈다.
또 청년실업 구제의 하나로 안전행정부에 ‘행정정보DB구축사업 예산’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 발로 뛴 노력 끝에 32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 돈으로 외부용역을 통해 법령정보의 입력사업을 시작하면서 시스템 구축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는 “시스템 구축으로 국민과 납세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법령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행정이 보다 투명하게 됐다”며 “납세자 조세저항이 줄어들고 또 부실과세가 현격히 줄어든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세청 직원들은 “우리가 만든 법령정보를 우리가 활용한다. 국세청 자존심을 살렸다”며 호평을 쏟아냈고 시스템이 지금보다 덜 세련된 초창기부터 93%가 넘는 국세청 직원들이 법령자료를 이용할 만큼 시스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우연에서 시작된 국세공무원…남긴 족적은 보석
임 세무사가 국세공무원이 된 것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지난 1976년 재수를 통해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친구와 함께 시험 삼아 9급 공무원 공채시험을 치른 것이 국세공무원의 길로 이어졌다.
그는 공무원 시험합격과 비슷한 시기 한남대학교 경영학과(야간)에도 합격하면서 주경야독했다. 공주・천안・장항세무서에서도 대전에 있는 대학에 다녀야 했다. 그의 성실성에 대해 자타가 공인하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을 현실화하면서 우연히 국세청에 발을 들여놨지만, 국세청에 그가 찍어 놓은 족적(足跡)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서울지방국세청 인사계에서 근무할 때는 전자인사시스템 구축을 건의, 국세청 직원들이 인사이동 직전에 전자인사시스템에 근무희망 관서와 근무희망 부서를 입력하도록 하는 근무희망 전보제도 도입에 공을 세웠다.
또 국세청 인사계장으로 재직할 땐 6급 이하 직원들이 승진하면 일정한 기간 지방으로 내려가 근무하도록 한 ‘승진자 인사 하향제도’에 대해 “승진한 것이 무슨 죄냐”며 폐지를 건의해 관철했으며 직원들을 직급별 경력에 따라 각 관서에 배치하는 균형인사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그는 36년10개월동안 국세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여러 제도를 기획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이라며 “직원들에게 부담을 안주면서도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일 할 방법을 찾아내는 노력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 인사계장 출신이 직원에게 주는 팁(?)…“말하자면…”
스무 살의 앳된 나이에 국세청의 말단 직급인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했던 임 세무사가 후배직원들에게 쏟는 사랑은 각별하다. 말단에서 공직을 시작했으니 말단 위치에 있는 후배 직원들이 겪는 밑바닥 애환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그다.
그래서일까. 그에게선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후배직원들에게 “네까짓 것이 무엇을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쏘아붙이는 권위적인 선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언제나 후배 직원의 눈높이에서 대화하며 후배 수준에서 제시하는 의견을 존중한다.
국세청의 특별조사 전담부서인 서울청 조사4국 1과장으로 있을 때 조사에 참여한 팀원 모두를 참여시켜 조사와 관련한 중간진행상황 보고를 받은 일화는 국세청에서 유명하다.
말단 직원들도 중요한 자리에서 보고 듣는 것이 있어야 실력도 배양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보고 과정에서 조사와 관련해 그 어떤 아이디어라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를 바꿨다.
결과는 곧 만족스러운 성과로 이어졌다. 고참들이 과거 비슷한 경험에 비춰 당연히 ‘과세불가’로 판단했던 부분들에 대해 신참들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고 면밀한 법리검토 결과 실제 과세로 이어지는 등 오히려 업무성과가 크게 향상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역삼세무서장 임기 내내 그는 세무서 직원 모두를 차례로 세무서장실로 불러 1시간씩 개별 인터뷰를 꾸준히 진행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직원들의 장단점을 파악, 국세청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개인 맞춤형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서울청 인사계와 본청 인사 1·2계장을 두루 거치는 등 무려 7년 6개월을 인사부서에서 일해 승진이나 요직으로 진출하기 위해 직원들이 갖춰야 할 자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였기에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의 발전방향에 접목해 줄 수 있었다.
인사계장 출신으로서 후배들을 위한 그의 조언은 “열심히 일하라”는 짧고도 함축적인 한마디였다.
열심히 집중적으로 일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성장시켜 같은 시간이 주어져도 남들보다 두세 배의 성과를 낼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이라면 어느 부서에 속해 있더라도 반드시 인사권자의 눈에 띄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를 아는 국세청 사람들은 “임 서장은 국세청 조직과 직원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며 “직원들이 산적한 업무처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땐, 각 과를 방문해 결재해줄 만큼 국세청 조직과 직원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평가했다.
■ 세무그룹 이원(理原) 출범…주목해야 하는 이유
15일 본격적인 출범한 세무그룹 이원(理原)은 그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합리적(理)이고 원칙적(原)인 마인드로 공정·투명·효율·고객지향을 추구하는 자세로 일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대표를 맡은 세무그룹 이원은 국세법령정보시스템 구축 당시 중요한 자문역할을 담당했던 김성훈 세무사와 이시헌 세무사 등 ‘법령정보 귀재인 용사’들이 함께 뭉쳐 둥지를 튼 것이 특징이다.
뜻을 같이 하는 좋은 사람들이 고용관계가 아닌 동등한 동료입장에서 같이 일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세무법인이 아닌 세무그룹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세무그룹 이원의 심벌마크(사진)는 두 개의 원이 일정부분 겹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납세자와 과세당국을 각각 의미하는 두 개의 원이 겹치는 부분이 투명한 것이 이채롭다.
임 세무사는 “두 개의 원이 납세자와 과세당국을 의미한다면 그 겹쳐지는 부분은 납세자와 과세당국 사이에서 조정역할을 하는 세무그룹 이원의 영역”이라며 “이원의 활동영역이 투명해질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에 충실하자는 뜻을 담아 투명하게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직생활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납세자와 과세당국 사이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납세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업무와 관련해선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일도 ‘맥’으로 통하는 해결점을 잘 찾는데다 한번 잡은 일은 끝장을 볼 만큼 추진력이 강하고 신망이 두텁다는 것이 그를 아는 국세청 안팎 사람들의 평가다.
국세청 사람들은 “국세청에서 인사업무를 7년6개월이나 봤으니 국세청 직원들 하나하나를 꿰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그 많은 국세청 직원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은 임 서장이니만큼 세무사로서도 짧은 시간 안에 반드시 대성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재원 대표세무사는…
임재원 대표세무사는 1957년 4월 현재 행정구역이 세종자치시인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한남대학교와 한남대학교 지역개발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77년에 9급 공무원으로 공주세무서를 시작으로 공직에 입문, 대전・장항・천안・동대전세무서를 거쳐 86년 수도권 우수인력으로 강동세무서에 전입했으며 부천・영등포・강남세무서 그리고 본청 납세지도과와 서울청 재산세과에 근무했다.
서울청 인사계에서 사무관으로 승진한 이후 ▲천안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국세청 법무담당 사무관 ▲국세청 국세법령정보시스템 구축팀장 ▲국세청 인사1·2계장 ▲강릉세무서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조사1과장을 지냈다.
57년 상반기 출생이므로 오는 2015년 6월 말 퇴임하게 되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퇴임 시점을 1년 반이나 앞당겨 역삼세무서장을 마지막으로 지난 12월 말 명예 퇴임했다.